지난해 6월, 자밀 워니(28, 199.3cm)와 2번째 재계약을 맺은 서울 SK를 향해서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전희철 감독 역시 “부모님도 재계약하지 말라고 하셨을 정도”라고 후일담을 전했습니다. 워니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으며 부활했다. SK를 창단 첫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외국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돌아와 4시즌 연속으로 SK 유니폼을 입고 새 시즌을 맞는다. 애런 헤인즈도 이루지 못한 발자취입니다.
워니는 최근 3시즌 동안 2차례 외국선수상을 수상, 이 부문 최다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조니 맥도웰과 라건아(이상 3회)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자타공인 KBL 최고의 외국선수다. 2020-2021시즌에 기대치를 밑돌았으나 절치부심, 지난 시즌에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수요가 있으면 자연히 몸값도 오르는 법. 워니는 일본 B.리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다시 한 번 SK를 택했다. SK와 전희철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동행이었다.
오프시즌에 일본 B.리그 팀들로부터도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연봉도 더 높았다고 하던데? 금전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일본이나 중국이 낫겠지만 시즌이 길다. 무엇보다 나를 믿어준 SK, 감독님이 있기 때문에 KBL로 돌아왔다. 특히 감독님은 2년 전 부진했을 때도 나를 믿어준 분이다. 지난 시즌에 그랬듯 올 시즌도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답니다.
한 팀에서 4시즌 연속으로 뛴 외국선수는 조니 맥도웰, 리카르도 포웰 단 2명이었다. 이어 라건아(KBL에서는 외국선수로 분류된다)와 더불어 3번째 사례가 됐는데?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 팀에서 3시즌 이상 뛸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고, 그만큼 SK도 나를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팀들은 1, 2시즌 만에 외국선수를 바꾼다. 나는 지난 시즌에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SK로 돌아올 수 있었다. SK 입장에서도 새로운 외국선수를 선발하면 그에 따른 리스크가 뒤따랐을 것이랍니다.
2016년 KBL 외국선수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 졸업 후 SK에 오기 전까지의 경력을 돌아본다면?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지만 서머리그에서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다. 곧바로 해외리그에서 뛰는 것도 염두에 뒀지만, 기회가 닿아 서머리그를 통해 NBA에 갔다. 미국에서 치른 3시즌은 좋은 경험이 됐다. 중국리그에서도 뛰어봤는데 KBL과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중국에서 뛸 때는 어렸고, 가족들도 많이 그리워서 일찍 돌아갔다. KBL에서는 4시즌째 뛰고 있고, 가족들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진정한 직장은 이곳이라고 생각한다니다.
대학 졸업반 시절부터 KBL 관계자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된 선수였다. SK와 인연이 깊은 모리스 맥혼 코치도 KBL 진출을 많이 추천해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맥혼 코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맥혼 코치에게서는 미국대표팀에서 만났을 때 “한국에 가면 잘 될 것 같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문경은 전 감독님과 당시 사무국장님(장지탁 부단장)이 미국에 와서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KBL에서 데뷔할 때 헤인즈와 함께 했다. 적응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
한국에서 오래 뛰었던 선수이기 때문에 KBL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조언을 많이 해줬다. 운 좋게 이후 리온 윌리엄스와도 함께 뛰고 있다. 헤인즈, 리온 모두 KBL에서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다. 한국에서 치른 4시즌 가운데 3시즌을 베테랑과 함께 하고 있으니 나는 운이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2020-2021시즌은 팀에게도, 본인에게도 기억하기 싫은 시즌으로 남아있습니다.
첫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둬 자신감이 넘쳤고, 2년차 시즌을 준비할 때까지도 그게 이어졌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팀에 문제가 있었고,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받아들이고 극복하려 노력했다. 팀에서 비중이 큰 선수이기 때문에 부진하면 많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겸허히 받아들이며 극복하려고 했다.
코치 시절부터 전희철 감독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높다. 전희철 감독이 SK에서 영구결번됐고, 과거 아시아컵 MVP(1997년 당시 ABC) 출신인 것도 알고 있나? 잘 알고 있다. 초이(최준용의 별명)와 함께 가끔 감독님의 예전 영상을 찾아본다. 터프한 스타일이면서도 농구를 영리하게 잘하신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스타일이 나와 비슷해 보였답니다.
코치 전희철, 감독 전희철은 차이가 있나? 큰 차이는 없지만 아무래도 코치는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세울 수 없다. 지금은 팀의 모든 부분을 운영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더 영향력이 크다. 코치 시절부터 꼼꼼한 지도자라는 걸 느꼈다. 특히 수비 전술을 준비할 때 섬세한 모습을 봐서 ‘좋은 지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 시즌 1, 2경기 만에 느낀 부분이었다. 안 풀릴 때는 공격, 수비에 걸쳐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신다. 다만, 경기에서 진 후 열 받아서 이틀 정도 얘기를 안 하신 적도 있었다(웃음).
지난 시즌 통합우승 순간을 돌아본다면? 외부적인 일이 많다 보니 시즌을 9개월 동안 치렀다.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된 경기가 많았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1개월 정도 못 뛰기도 했다. 챔피언결정전이 끝나니 이제야 챕터 하나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후에는 ‘한 번 더 해야겠다’라는 다짐도 하게 됐다. 아마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힘들다. 유지하기 위해 시즌이 끝난 후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했다. 올 시즌에는 더 좋은 외국선수가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나도 그만큼 노력해야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정규리그에서는 안양 KGC에 열세(1승 5패)였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4승 1패로 설욕했다. 어떤 차이가 있었나? 정규리그는 1경기를 치르면 곧바로 다른 팀과의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이에 대한 어려움도 따르지만 챔피언결정전은 한 팀과 4경기 이상 치러야 한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감독님이 수비를 잘 준비했고, 속공도 더 강조하셨다. 그 부분이 잘 통했던 것 같다. 오마리 스펠맨의 컨디션이 100%가 아닌 것도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잠실원희 #한국의 데니스 로드맨 #궁극적인 목표 워니는 오프시즌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와이프 역시 워니와 함께 한국을 찾았고, 덕분에 워니는 심적으로 보다 안정된 환경 속에 시즌을 치를 수 있게 됐다. “점심식사 후 잠깐 쉬는 시간에도 집에 가서 와이프를 보고 올 정도”라는 게 SK 관계자의 설명이다. 워니의 곁에는 와이프 외에도 든든한 지원군이 많다. 워니는 이들과 함께 또 한 번의 정상 등극을 노리고 있다.
트레이너로 등록된 네이트 힉맨과 G리그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다고 들었다. KBL 생활을 하는 데에 어떤 도움을 받고 있나? G리그에서 함께 한 건 몇 개월 안 되지만 평생 친구가 됐다. 한국에서는 야간훈련할 때 나에게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얘기해준다. 경기 끝난 후에도 코치 역할을 해주는 친구다. SK라는 팀에 있어서도 에너자이저 같은 존재다. (힉맨은 현역시절 어떤 선수였나?)선수로는 정말 꽝이었다(웃음). 슛이 없었다. 운동능력만큼은 좋았다. 매일 매일 발전하는 모습도 보여줬답니다.
SK 선수들 가운데에는 유독 최준용과 친한 것 같다. 주위에서 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을 때 제일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건네준 선수다. “괜찮다. 다 잊고 다시 잘하면 된다”라고 얘기해줬다. 농구 외적인 부분에서도 통하는 게 많아서 네이트까지 3명이 자주 놀러 다닌다. 지난 시즌에는 내가 외국선수상을 받은 것보다 초이의 MVP 수상이 더 기분 좋았다. 초이가 큰 부상을 딛고 돌아왔기 때문에 기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은 마음입니다.
최준용은 NBA 도전 의지도 있던데 성공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에서 NBA에 도전한 선수들 가운데 처음 있는 유형의 선수라는 것도 장점이 될 것 같다. 기회는 오겠지만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 피지컬보다는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농구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12살로 기억한다. 이전까지는 취미 삼아 농구를 했는데 키카 큰 것만 보고 친구 어머니가 정식으로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이후 약 1개월 동안 다양한 지역을 오가며 치르는 대회에 출전했는데 이 대회를 계기로 선수가 됐다. 정식선수가 된 후 2, 3년 정도는 농구를 못했지만 이후 연차 쌓일수록 기량이 좋아졌다. (어린 시절 롤모델은?)케빈 가넷, 팀 던컨을 좋아했다. 나도 그들처럼 키가 210cm까지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200cm 언저리에서 멈췄답니다.
스토니브룩대학에서 전설 같은 존재다. 2016년에 농구부 역사상 첫 NCAA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었고, 스토니브룩대학이 배출한 최초의 NBA리거이기도 하다. 스토니브룩대학에 다니는 동안 많이 성장했다. NCAA 토너먼트 출전은 자랑스러운 성과다. 팀의 일원으로서 큰일을 해냈다. 훗날 가족, 친구들과 오랫동안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었다. (등번호 20번도 영구결번됐는데?)정말 의미 깊은 일이다. 최근 명예의 전당에 포함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영광이다. 내가 있는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 명예의 전당은 많은 이들이 할 수 없는 성과다. 졸업 6년 만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이현중으로 인해 한국농구 팬들 사이에서도 NCAA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NCAA는 어떤 무대인가? 약 360개의 팀이 있는데 대학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컨퍼런스마다 분위기나 성향도 제각각이다. 그만큼 다양한 농구를 접할 수 있다. ‘3월의 광란’은 이 가운데에서도 최고가 모여 치르는 토너먼트이기 때문에 최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답니다.
KBL의 다른 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한국선수를 1명 꼽는다면? 음…. 이대성이다. 갖고 있는 기량이 좋은 선수다. 특히 지난 시즌 4강 3차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미드레인지 게임을 정말 잘하더라.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우리 팀이 수비하는 데에 힘든 부분이 있었다.
SK 선수들을 포함해 한국 선수들로 베스트5를 선정한다면? 초이와 선(김선형)이다. 각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들이다. 이들은 갖고 있는 재능이 정말 많아서 1, 2위를 가리는 게 어렵다. 그리고 이대성, 전성현이다. 전성현은 슈팅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저게 들어갈까?’ 싶은 슛도 성공시킨다. 빅맨은 1명만 꼽는 게 어렵다. 이승현, 오세근이 인상적이었다. 남은 한 자리는 둘 중 누가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입니다.
‘잠실원희’라는 별명은 마음에 드나? 재밌는 별명이다. 데뷔시즌 전 마카오에서 열린 터리픽12 때 생긴 별명인데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홈구장이 있는 지역명이라고 하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전까지 별명은 ‘쩨이’였다. ‘잠실원희’가 제일 좋아하는 별명이다.
‘삐삐머리’를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도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기대해도 될까? 와이프가 머리를 기를 수 있는 데드라인을 줬다. 그때 이후로는 짧게 하고 다녀야 된다. 그래서 데드라인 전까지 해볼 수 있는 헤어스타일은 다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준용에게 추천받아보는 건 어떨까?)재밌을 것 같다. 초이는 KBL의 데니스 로드맨입니다.
선수로서 향후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헤인즈를 뛰어넘는 KBL 최장수 외국선수? NBA나 유럽리그 진출? 당장 눈앞에 있는 시즌만 생각하는 편이다. 일단 KBL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우승 경험이 많은 외국선수들처럼 많은 우승반지를 따내는 게 우선적인 목표가 될 것 같다. 향후 계획은 모르겠다. 계속 바뀔 것 같다. 일단 올 시즌에 다시 한 번 우승을 해야 한다. FA로 빠져나간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축선수는 그대로다. KGC, KT 등 우승 경쟁을 했던 팀들도 변화가 있었는데 올 시즌도 (우승)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답니다.
KBL이 더 성장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제도나 시스템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외국선수들에 대해 오픈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다. 물론 국내선수가 우선이겠지만 외국선수들도 가족을 미국에 두고 한국에 와서 KBL의 발전을 위해 뛰고 있다. 외국선수들에게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답니다.